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How We Do It - 로버트 마틴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로버트 마틴 지음, 김홍표 옮김 / 궁리

성과 생식은 인간의 모든 활동 중에서도 가장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인간이 동물로서의 뿌리 깊은 본능에 따라 행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구태여 교육을 받지 않아도 누구나 때가 되면 알아서 하기 마련이라는 통념이다. 반면 인간의 성은 다른 동물과는 퍽 다르다는 통념도 있다. 동물은 동성애를 하지 않는다느니 가임기가 아닐 때도 성교하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느니 하는 주장은 타락한 문명에 의해 왜곡되어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의 성 풍습을 비판하는 데 쓰이곤 한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인간의 성과 생식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놀랍도록 적게 안다. 인간생식생물학은 역사가 짧거니와 개입에 의한 실험이 어렵다. (이유야 다들 알리라.) 친척인 영장류를 비교 연구하여 진화적 관점에서 살펴보거나 발생학적 관점에서 살펴보는 연구도 오래되지 않았다. 이런 연구는 호기심 차원에서만 중요한 게 아니다. 우리 생식기에 관련된 의학적 문제를 극복하는 데도 중요하고, 안전한 피임과 효율적 불임 치료라는 상반된 양대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즐거운 성생활을 누리는 데도 중요하다.

로버트 마틴은 이 분야의 권위자이고, <우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는 일반인을 위한 이 분야의 교과서라 할 만하다. 정자와 난자부터 생리, 짝짓기와 임신, 출산, 수유, 신생아 양육, 피임과 인공 생식까지 인간이 어떻게 수태되고 태어나는지를 그야말로 종합적으로 다루었는데(더구나 많은 영장류, 포유류, 조류의 사례도 소개된다), 흔한 생식기 단면도나 생리 주기 도표 한 장 삽입하지 않았는데도 지루할 틈 없다. 저자는 주요 연구들을 인용하면서 그 방법론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모호하거나 이율배반적인 결과는 얼버무리는 대신 우리의 지식이 아직 이 수준이라고 밝히며, 몇몇 주제에서는 자신이 전문가로서 제안하는 가설을 소개한다.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못지않게 잘못 알았던 '상식'이 많이 깨진다. 생리 주기 한중간쯤인 배란기 전후가 가장 임신하기 좋은 시기라는 통념은 의심스럽다. 정자가 자궁경부에 저장된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생리 직후 초기 2주가 더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 은폐된 배란이 인간만의 특성이라는 것도, 인간의 침습성 태반이 진화적으로 가장 발달한 형태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문제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생리는 왜 진화했는지, 인간은 왜 다른 포유류처럼 자궁이 둘이 아니라 하나인지, 입덧은 왜 하는지, 젖을 얼마나 물리는 게 자연스러운지, 우리는 모른다. 하긴 정확한 임신 시점을 알 수 없어 출산 예정일을 앞뒤 2주까지 폭넓게 잡는 게 현재 우리의 한계가 아닌가.

사실 오늘날 성과 생식은 피임과 출산 보조 기법의 발전, 극적으로 감소한 여성의 평생 출산 횟수 등으로 몇 세대 전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양상이 달라졌다. 그중 무엇이 상수이고 변수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그에 따라 바람직한 개입을 정하기 위해서 꼭 읽어볼 책이다. 영미 아마존 서점의 독자 서평들 중 4분의 1가량이 생물학자, 인류학자, 산부인과 의사 같은 업계 내부자들의 글인 것이 재미있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고, 그들이 하나같이 책의 정확성을 칭찬하며 자신도 몰랐던 내용을 배웠다고 말하는 경우는 더욱더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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