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색스: 나의 주기율표 (번역)

<뉴욕 타임스 선데이 리뷰>에 실린 올리버 색스의 글을 번역해 보았다. 원 기사는 여기.

***

올리버 색스: 나의 주기율표
2015년 7월 24일

나는 매주 <네이처>나 <사이언스> 같은 과학 저널이 도착하기를 열렬히, 거의 탐욕스럽게 기다린다. 그랬다가 받으면 곧장 물리 과학 관련 기사들을 펼친다. 생물학이나 의학 관련 기사들부터 봐야 하는 게 아닌가도 싶지만 그러지 않는다. 내가 어릴 때 처음 매혹된 것은 물리 과학이었다.

<네이처> 최근호에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랭크 윌첵이 쓴 흥분되는 기사가 실렸는데, 중성자와 양성자의 서로 살짝 다른 질량을 계산하는 새로운 방법을 알아냈다는 내용이었다. 새 계산법에 따르면 중성자가 양성자보다 아주 약간 더 무거운 것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 비는 939.56563 대 938.26231다. 사소한 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비가 지금과 조금이라도 달랐다면 우리가 아는 오늘날의 우주는 영영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윌첵 박사는 우리가 이것을 계산할 수 있게 됨으로써 “앞으로 핵 물리학의 정밀도와 범용성이 오늘날 원자 물리학이 달성한 수준까지 높아질 것이란 예측을 해봄 직하다”고 적었다. 혁명적인 일이다. 아, 그러나 나는 그 혁명을 볼 수 없을 것이다.

프랜시스 크릭은 이른바 ‘어려운 문제’가 – 뇌에서 어떻게 의식이 생겨나는가 하는 문제 – 2030년까지는 풀릴 것이라고 확신했다. 크릭은 내 동료인 신경과학자 랠프에게 “당신은 그 모습을 보게 될 겁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내게도 말했다. “올리버, 당신도 내 나이까지 산다면 볼 수 있을 겁니다.” 크릭은 80대 말까지 살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에 관해서 연구하고 고민했다. 랠프는 52세의 이른 나이에 죽었다. 그리고 지금 82세인 나는 치료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의식이라는 ‘어려운 문제’는 그다지 염려하지 않는다. 사실은 그게 문제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윌첵 박사가 마음에 그리는 새로운 핵 물리학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은, 그 밖에도 물리 과학과 생물 과학에서 등장할 무수한 돌파구들을 보지 못하리라는 것은 슬프다.

몇 주 전, 도시의 불빛에서 한참 떨어진 시골에서 밤하늘 가득히 (밀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별들이 가루처럼 흩뿌려진” 것을 보았다. 이런 밤하늘은 칠레의 아타카마 같은 고지대 사막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 텐데(그래서 그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망원경들이 설치되어 있다), 하고 생각했다. 그 천상의 광휘를 보노라니, 불현듯 이제 내게는 남은 시간과 남은 삶이 별로 없다는 깨달음이 엄습했다. 내게는 천상의 아름다움과 영원함에 관한 감각이 삶의 덧없음에 대한 감각과 뗄 수 없이 얽혀 있다. 죽음에 대한 감각과도.

나는 친구 케이트와 앨런에게 말했다. “죽어갈 때 저런 밤하늘을 다시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겠군.”

“우리가 휠체어로 바깥으로 데려가줄게.” 친구들이 대답했다.

지난 2월에 전이암에 걸렸다는 이야기를 글로 쓴 뒤, 나는 많은 위로를 받았다. 수백 통의 편지가 쏟아졌고, 많은 사람들이 애정과 감사를 표현했으며, 덕분에 나는 (이런저런 일들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내가 착하고 쓸모 있는 삶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 모든 위로가 지금까지도 대단히 기쁘고 고맙다. 그렇긴 하지만, 그중 무엇도 별이 총총한 밤하늘만큼 내게 강하게 와 닿은 것은 없었다.

나는 꼬마 때부터 상실에 – 내게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에 – 대처하기 위해서 비인간적인 것으로 시선을 돌리는 방법을 익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무렵 여섯 살의 나이로 기숙학교에 보내졌을 때는 숫자가 내 친구가 되어주었다. 열 살에 런던으로 돌아온 뒤에는 원소들과 주기율표가 내 친구였다. 살면서 스트레스를 겪는 시기에 나는 늘 물리 과학에게로 향했다. 아니, 귀향했다. 생명이 없지만 죽음도 없는 세계로.

그리고 지금, 죽음이 더 이상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 너무도 가까이 느껴져서 외면할 길 없는 – 엄연한 존재로 느껴지는 인생의 현 단계에서, 나는 꼬마 때처럼 다시 한 번 금속들과 광물들로, 영원의 작은 상징들로 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책상의 저쪽 끝에는 예쁜 상자에 담긴 81번 원소가 놓여 있다. 영국의 원소 친구들이 작년 7월에 내 81번째 생일 선물로 보내준 것이다. “탈륨 생일을 축하합니다”라고 적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맞은 82번째 생일을 기념하여 82번 원소 납에게 할당된 공간도 있다. 납으로 된 작은 상자도 하나 있는데, 그 속에는 90번 원소 토륨이 담겨 있다. 다이아몬드처럼 아름답고 물론 방사성이 있는 – 그래서 납 상자에 담아 둬야 한다 – 토륨 결정이.

올해 초에 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몇 주 동안, 간이 반쯤 전이암에 먹혔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분이 썩 괜찮았다. 2월에 간동맥으로 약물을 방울방울 주입하여 암을 다스리는 처치를 받았을 때는 – 색전술이라고 한다 – 두 주 정도 끔찍했지만 이후에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에너지가 가득하여 엄청나게 괜찮았다. (그 색전술로 전이암은 거의 싹 제거했다.) 일시적 소강기가 아니라 아예 휴지기를 허락받은 것 같았다. 우정을 다지고, 환자들을 만나고, 글을 쓰고, 고향 영국을 방문할 시간을. 그때 나를 만난 사람들은 내가 치명적인 상태라는 것을 못 믿겠다고 했고, 나도 내 상황을 쉽게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건강과 에너지가 넘치던 기분은 5월에서 6월로 접어들면서 잦아들었다. 그래도 82번째 생일은 멋지게 기념할 수 있었다. (오든은 생일에 대한 기분이 어떻든 간에 생일은 반드시 기념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속이 메스껍고 식욕이 없다. 낮에는 선득하고 밤에는 식은땀이 난다. 무엇보다 노상 피곤하고,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지나치게 할라치면 갑자기 탈진한다. 아직 매일 수영을 하지만 요즘은 더 천천히 한다. 호흡이 약간 가빠진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제까지는 외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아프다는 것을 나도 안다. 7월 7일 CT 스캔 결과, 암이 간에서도 다시 자란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제는 그 너머까지 번진 게 확인되었다.

지난 주에는 새로 면역요법을 받기 시작했다. 위험이 없지 않은 방법이지만, 덕분에 몇 달만이라도 좋은 시간을 좀 더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나는 치료에 돌입하기 전에 재밌는 일을 좀 하고 싶었다. 노스캐롤라이나로 가서 듀크 대학에 있는 근사한 여우원숭이 연구 센터를 구경하는 것이다. 여우원숭이는 모든 영장류를 탄생시킨 계통과 근연관계가 가까운 종이다. 5천만 년 전 내 조상 중 하나가 나무에서 살아가는 작은 생물로서 오늘날의 여우원숭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였을 것이라고 상상하면 기분이 좋다. 나는 여우원숭이의 펄떡거리는 활력이 좋고 호기심 많은 성격이 좋다.

내 책상에서 납에게 할당된 동그란 영역 바로 옆은 비스무트의 땅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자연 상태로 발견된 비스무트도 있고, 볼리비아의 광산에서 온 작은 리무진 모양의 비스무트 덩어리들도 있고, 용융 상태에서 서서히 식어 아름다운 무지갯빛을 띠고 있으며 호피 원주민 마을처럼 층층이 테라스가 진 비스무트도 있고, 유클리드와 기하학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려는 듯이 원통과 구 모양을 한 비스무트도 있다.

비스무트는 83번 원소다. 나는 살아서 83번째 생일을 맞을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주변에 온통 ‘83’이 널려 있는 것이 어쩐지 희망 차게 느껴진다. 어쩐지 격려가 된다. 게다가 나는 금속을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눈길 주지 않고 무시하기 일쑤인 수수한 회색 금속 비스무트를 각별히 좋아한다. 의사로서 잘못된 취급을 받거나 하찮게 여겨지는 환자들에게 마음이 가는 내 성격은 무기물의 세계에까지 진출하여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비스무트에게 마음이 가고 마는 것이다.

내가 (84번째) 폴로늄 생일을 맞지 못할 것은 거의 확실하다. 강하고 살인적인 방사성을 띤 폴로늄을 주변에 놓아두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러나 한편 나의 책상, 나의 주기율표의 반대쪽 끝에는 아름답게 절삭된 (4번 원소) 베릴륨 조각이 놓여 있어,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곧 끝날 내 인생이 얼마나 오래전에 시작된 것이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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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2015/07/26 21:34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애이불상 2015/07/27 02:34 # 삭제 답글

    색스 할아버지의 심경에 숙연해집니다. 번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SUGARSOUL 2015/07/27 17:14 # 삭제 답글

    번역감사드립니다.마음이 아려오네요.
  • SvaraDeva 2015/07/28 07:59 # 답글

    생각있는 사람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네요.
  • 바람 2015/07/28 10:53 # 삭제 답글

    올리버 색슨을 좋아 했는데 이런글을 볼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2015/07/28 12:5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7/28 18:4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qwertjh 2015/07/29 15:57 # 삭제 답글

    번역 감사합니다~~~!! 네이처나 사이언스를 줄줄 읽을 수 있는 그날이 나에게도 오길...
  • 이것저것번역 2015/07/30 20:09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https://www.facebook.com/permalink.php?story_fbid=1051768221501809&id=322236531121652 이곳을 통해 공유를 했습니다-
  • 2015/08/05 02:5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Liberata 2015/08/31 03:26 # 삭제 답글

    정말 고맙습니다. 나의 영어가 조금이라도 괜찮으면 그분을 뵈러 가고싶은맘으로 살아가고 있는사람으로서 이런 그분의 생생한모습을 접한다는건 참 큰 행운입니다. 번역해주셔서 그리고 나눠주셔서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 2015/08/31 17:24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danaa 2015/09/20 18:20 # 삭제 답글

    스크랩해갑니다. 좋은 번역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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