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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컴퓨터를 켜자마자 너무 모에한 기사를 읽어서, 번역해봤다. (일하기가 싫어서...) 올해 추리문학 신을 스티그 라르손이랑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이 휩쓸어서 다시 한번 북구 범죄소설 전통이 주목 받다 보니 이런 기사도. 셰발과 발뢰의 책은 <웃는 경관> 한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범죄소설 독자들의 온상인 알라딘에서만큼은 나름 유명세가 있다. 중년탐정 애호가인 내게도 셰발과 발뢰는 고마운 사람들. 그나저나 번역하다 보니 이건 마르틴 베크 이야기가 아니고 셰발과 발뢰의 연애 이야기... 그래도 중간에 멈출 수는 없어서 끝까지 번역을. *** ![]() The Queen of Crime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가 60년대에 스웨덴에서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쓰기 시작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경찰에 대한 사람들의 시각을 영원히 바꿔놓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어쩌면 그것은 출판 역사상 가장 신기한 공저 작업이었을지도 모른다. 남자와 여자, 연인이 매일 저녁 마주 앉아 글을 쓰다니. 저녁식사를 끝낸 후, 아이들은 침대에 들었다. 여자는 이전에는 한번도 글을 써본 적이 없다. 남자는 책을 낸 적이 있는 작가이긴 하지만 이런 책은 아니었다. 그들은 손으로 글을 쓴다. 필요하다면 밤도 샌다. 한 사람이 한 장씩. 다음 날 저녁, 그들은 서로 쓴 장을 바꿔서 타이핑을 하고, 그러는 동안 내키는 대로 편집을 한다. 그들은 논쟁하지 않는다. 적어도 단어를 놓고 따지지는 않는다.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길어서 접습니다 1마일 속의 우주쳇 레이모 지음, 김혜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십여 일이었다. 큰 물길을 따라 16개의 보를 설치하여 홍수를 막고 생태공원을 조성하겠다는 4대강 사업이 정말로 시작되었고, 타당성이 아니라 예산을 쟁점으로 하여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차라리 시끄럽게 이야기가 되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은 것이 더 허탈하다. 그 십여 일 동안 위안이 되어준 책이 있었다. <1마일 속의 우주>는 나이 지긋한 한 대학교수의 통근기이다. 그가 집에서 학교까지의 1마일을 37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걸어 다니면서 했던 생각들이 적혀 있다. 1마일은 1.6킬로미터이니까 아무리 느리게 걸어도 30분이면 될 것이다. 어림셈을 해보니까 그는 2만번 정도 같은 길을 왔다 갔다 한 것이다. 여느 도시의 여느 직장인 이야기라면 그것 참 지겨웠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으리라. 그러나 이 천문학자가 걷는 통근길은 다르다. 그는 고졸한 건축양식을 자랑하는 전원 마을을 벗어나서 숲으로 들어간다. 떡갈나무와 단풍나무가 섞인 아담한 숲을 걸으며 딱따구리의 소리를 듣다 보면, 어느새 완만하게 경사진 초원으로 나온다. 개울에 걸쳐진 나무 다리를 건너는 것이 그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이따금 물이 불면 철벅철벅 발을 적셔야 할 때도 있다. 그것이 대단한 길이라서 그 안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평범한 길이기 때문에, 사계절의 갈마듦과 생명의 영원함이 또렷한 대비를 이루는 전형적인 풍경이기 때문에, 우주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대학에서 천문학과 물리학을 가르치는 저자는 시선을 던지는 어느 곳에서나 자연의 작동방식을 읽어낸다. 털부처꽃의 수술과 암술을 들여다보면서 자가수분을 방지하는 교묘한 방식에 감탄하고, 가을의 마지막 제왕나비를 떠나 보내면서 그 디엔에이(DNA) 속의 무엇이 나비로 하여금 멕시코까지 머나먼 길을 날아가게 하는지 궁금해한다. 과학만 읽어내는 것도 아니다. 개울의 수력을 써서 삽 공장을 돌렸던 백여 년 전의 선조들을 떠올리고, 북아메리카 특유의 침엽수림을 영국의 전원과 비슷한 풍경으로 바꿔놓은 야심 찬 조경가들과 대지주들을 생각한다. 일상의 산책에서 세상의 경이를 읽어내는 시선이 과학자답게 이면의 작동법까지 파고드는 한편, 노래하는 시인의 목소리도 갖추었다. 그런데 이 책이 내게 위안이 된 것은 순진한 도피를 맛보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었다. 저자도 결국에는 인간이 자연을 만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깃들어 살고 싶은 소속감이라고 말한다. 물론 수질을 위해서 준설이 필요한 곳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넉 달 만에 궁리해낸 방책을 이삼 년 만에 밀어붙여서 우리에게 소속감을 주는 하천 환경이 탄생할 수 있을까. 깃들고 싶은 환경이 아니라 청계천처럼 구경하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아닌가. 걱정만 더 깊어진다. 여기저기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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