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진화론 발표를 20년이나 미룬 까닭은? - 다윈 평전
다윈 평전
에이드리언 데스먼드, 제임스 무어 지음, 김명주 옮김 / 뿌리와이파리

생물학자들에게 다윈은 신이다. 다른 어떤 과학자도 이처럼 열렬한 숭앙을 받지는 못했다. 다윈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발상을 떠올린 혁명가로 여겨지고, 그가 쓴 책은 15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읽히며, 모세처럼 수염을 기른 그의 얼굴은 과학자들이 가장 많이 문신으로 새기는 얼굴이다. 농담이 아니다. 지난해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과학자들의 문신을 수집해 책으로 펴냈는데, 다윈의 얼굴을 새긴 사람이 어찌나 많았던지 아예 '다윈' 챕터가 따로 있을 지경이다.

그뿐이랴, 다윈을 연구하는 과학사적 작업은 '다윈 산업'이라고 불린다. 그가 워낙 중요한 인물인데다 엄청나게 많은 연구거리를 남겼기 때문이다. 그는 비밀 공책들, 2천 명과 주고받은 1만4천 통의 편지들, 영수증 등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이것을 정리하는 작업은 여태 진행형이다. 1990년대에 다윈 평전의 양대 산맥으로 일컫는 두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윈 산업 덕분이었다.

양대 산맥이란 지금 소개하는 책 <다윈 평전>과 재닛 브라운의 두 권짜리 <찰스 다윈 평전>이다. 고맙게도 연전에 둘 다 우리말로 번역되었고, 지난해에는 중요한 편지들을 엄선한 두 권짜리 <찰스 다윈 서간집>까지 번역되어 삼위일체가 완성되었다. 그러니 이제야말로 생물학자들의 신에 대해 알아볼 때다. 그런데 왜 하필 1300쪽이나 되는 이 두꺼운 책이냐고? 그게 참, 양대 산맥의 저쪽 브라운의 책은 두 권을 합쳐 2천 쪽이 넘기 때문이다.

<다윈 평전>은 방대한 자료를 그저 나열하는 대신, 한 가지 중심적 질문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지며 마치 미스터리가 담긴 소설처럼 이야기를 끌어간다. 어느 모로 보나 존경할 만한 신사였던 서른 살의 청년이 감히 어떻게 인간은 연체동물에서 진화했다는 불경한 생각을 주장하게 되었을까? 게다가 그런 생각을 해내고도 20년이나 발표를 미룬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책은 다윈과 빅토리아 시대의 상호작용을 조명한다.

흔히 퍼진 생각과 달리, 종이 변한다는 발상을 다윈이 최초로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앞서 여러 선배들이 이런저런 형태의 진화 개념들을 제안해놓았다. 자연선택이 진화의 메커니즘임을 밝혀낸 것은 다윈의 독창적인 업적이라 하겠으나, 그것 역시 맬서스의 <인구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다윈이 집안 전통으로 물려받은 유니테리언파의 회의주의적 세계관이나 노예제에 대한 반감은 그의 과학에도 뜻밖의 큰 영향을 미쳤다. 한마디로 그는 시대의 산물이었다.

이 책이 묘사하는 다윈은 누구보다도 복잡한 인물이다. 그는 비국교도이면서도 성직자 공부를 했다. 부동산 투자에 소질이 있었던 부유한 중간계급이면서도 정치적 급진파들의 구미에 맞는 사상을 제공했다. 5년간 세계일주를 한 활동가였으면서도 나중에는 켄트의 시골집에 틀어박혀 은둔했다. 그는 세상을 뒤흔들 이론을 생각해내고도 그것이 미칠 사회적 여파를 걱정하여 장장 20년간 제 심중을 꼭꼭 감췄다.

책은 다윈의 이런 모순적인 면모들을 부각했기에, 1991년 출간 당시 혁명가이자 천재로서 다윈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는 평을 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대수랴. 번득이는 영감 따위가 아니라, 평생 발목을 잡은 질병에도 불구하고 실험, 관찰, 편지를 통한 정보 수집에 전념했던 그의 초인적 노동이야말로 그를 천재로 불러 마땅한 근거다. 그는 어쩌다 운 좋게 옳은 생각을 떠올린 사람이 아니었다. 너무나 많은 사실을 수집하고 숙성시켰기에 도저히 틀린 생각을 할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과학도 결국 인간의 여느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 생물학자들의 신도 결국 시대의 초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 평전은 훌륭하게 보여준다.

1300쪽의 책에서 뽑은 십여 개의 발췌문 (밑줄은 내가)
by starla | 2012/01/29 20:59 | hobby #1 | 트랙백 | 덧글(0)
12/01/28
조용한 설이었다. 별로 만나고 싶지 않은 친척들이 오지 않아 솔직히 기뻤다. 대신에 무정한 나조차 가끔 안부가 궁금한 막내 삼촌과 숙모는 와주어서 또 좋았다. 삼촌이 방어 두 마리, 도미 세 마리, 우럭 한 마리와 회칼을 지참하고 와서 방어와 도미는 회를 떠주고 우럭은 매운탕을 끓여주고 남은 도미는 나중에 쪄 먹으라며 속을 다듬어 소금을 뿌려주었기 때문에 하는 말은 아니다. 다들 술 없이 그걸 먹은 것도 좋았다.

올라오는 기차에서는 '틴틴'을, 와서는 집 근처 극장에서 '자전거 탄 소년'을 보았다. 연휴 마지막 날이라 관객이 제법 있었는데, 대부분은 영화를 보고는 싶지만 다른 것은 시간이 안 맞아서 정보도 없이 이 영화를 택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산만하던 그 관객들이 영화가 시작되자 일제히 몰입하는 것이 아닌가. 열 살쯤 된 아이도 두세 명 있었는데 열심히 보는 것 같았다. 과연 아이들도 나름의 수준에서 이해할 만한 드라마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은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을 봤다. 아베 히로시가 등장해서 깜짝 놀랐다. 연휴 기분을 떨치지 못해 많이도 놀았구나 싶다.

참, 연휴 마지막 날은 아침에 호수공원을 산책하다가 c본부장님과 마주쳤다. 엄밀히 따지면 마주쳤다고 할 수는 없는데, 나는 그쪽을 못 보고 그쪽만 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속도로 걸을 거라면 차라리 뛰지 그러느냐'는 문자를 받고서 어찌나 부끄럽던지. 내가 무방비 상태일 때 누가 나를 보았다는 걸 알면 좀 부끄럽다. 무심결의 표정은 워낙 퉁명스럽기 때문이다. 또 엊그제는 멀리서 와주신 (용건이 있긴 했지만) hy님과 저녁의 호수공원을 산책했다. 지금은 가장 황량하여 아무것도 없는 때. 그러나 벌써 다음주가 입춘이다. 봄장미가 피고 튤립 구근에 싹이 돋고 연잎이 올라올 날도 멀지 않았다. 마음속에서는 그런 것들을 보며 걸었다.
by starla | 2012/01/28 22:58 | 무미건조 다이어리 | 트랙백 | 덧글(6)
빨강, 노랑
내가 내 몸을 갖고 산 지 마흔 해를 바라보니, 몸살의 조짐쯤은 미리 안다. 우선 어깨가 딱딱해지고 눈이 슴벅슴벅해진다. 이때 당장 쉬면 대개 낫지만, 방치하면 심한 오한과 근육통으로 이어진다. 이번엔 어쩐 일인지 소화불량까지 겹쳐 사흘 넘게 호되게 고생했다. 모처럼 푸근한 나날이었다는데 우리집에선 애꿎은 보일러도 함께 고생했다. 오늘 선배와 통화를 하다가 '아플 때 혼자 있으면 괜히 섪지'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별로 그렇지도 않다. 아플 때 혼자인 것은 홀가분하기도 하다. 어차피 얼른 나아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몸살 따위가 아니라 더 중한 병을 오래 앓는 사람의 기분은 다르겠지. 아무튼 나는 오히려 좋을 때가 아쉽다. 다시 멀쩡해지니까 보고 싶은 사람 생각이 난다.
by starla | 2012/01/19 22:48 | some photos | 트랙백 | 덧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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